세월호 '데자뷰' 중대본 '트라우마'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3일로 18일째입니다. 200여명이 사망했고 70여명을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 대형 전광판에는 전날 오후 안 좋은 소식이 보도됐습니다.

이번엔 지하철 충돌사고였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200여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하는데, 또 터진 안전사고에 취재진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나 봅니다.

보도가 난 지 몇 분 만에 신속하게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구성됐습니다.

사고수습본부가 꾸려졌다고 하니, 세월호 침몰 사고로 조직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떠올랐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인재(人災)를 넘어선 관재(官災)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된 이른바 '우왕좌왕 중대본' 말이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사고 당일에 안전행정부에는 중대본이, 해양수산부에는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각각 구성됐습니다.

법 체계에 따라 대규모 재난인 세월호 침몰 사고 대책을 안행부 장관이 총괄하는 것이 맞지만, 실제 현장에는 해수부 장관이 총괄을 맡는 등 엇박자를 보였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을 허비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구조만을 바랐던 학부모들은 정부의 갈지(之)자 행보에 다급함을 넘어선 울분과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진도가 슬픔에서 분노로 돌아선 시점은 이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자식을 찾기 위해 사고 해역을 찾아 헤맨 학부모는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 정부는 국민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정부에 대한 불신(不信)의 끝을 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학부모는 "지하철 사고가 났다고 정부는 본부를 구성한다고 하지만, 그럴싸하게 말하는 것일 뿐 저 곳에서 뭘 어떻게 제대로 할 것이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실종자 가족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18일째 봉사하고 있는 봉사자들의 마음도 비슷했습니다.

서울에서 봉사하러 내려온 한 50대 남성은 "서울 지하철 충돌 사고로 국토부 공무원이 전원 소집된 것은 일을 수습해야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게 공무원 할 일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남성 봉사자는 "정부가 저렇게 신속하게 대응한다고 보도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알지 않느냐. 과하게 홍보하고 난 후 제대로 된 구조 구난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 너무나 실망스럽다"고 했습니다.

진도 주민인 한 30대 여성 봉사자는 "이곳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 알겠지만 지칠대로 지쳐 지하철 사고에 관심 쏟을 여력 조차 없다. 우리도 관심이 없다"면서 "수 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고에 대한 수습도 없이 수 백명이 다친 사건을 TV에서 크게 방송하는 것이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솔직한 말로 누가 죽었으면 난리가 났을까, 우리가 너무 힘드니까 서울에서 불이 난다고 해도 관심이 없다. 청와대에 불이 나도 천벌 받았나보지 이럴 것 같다"고 냉소적 심정을 털어놨습니다.

실종자 가족 뿐 아니라 봉사자들까지, 이곳 진도 가족들은 지금 너무나 허탈한 마음 뿐입니다.

정부가 중대본이든 범대본이든 뭘 꾸리든 조금만 더 빠르게 대처했다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를 때려섭니다.

당연히 이들도 서울에서 사고가 크게 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일부터 하지 않고 호들갑스럽게 일을 한다고 하는 정부와 그것을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미운 것이겠지요. 세월호의 데자뷰처럼 말입니다.

 

 

201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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