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도, 책임도 '실종'…참사는 '진행중'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24일로 100일째를 맞았지만, 아직 실종 상태인 건 비단 진도 앞바다에 남은 10명의 희생자뿐이 아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물론 '책임'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약속했던 특별법 제정도 여당의 수사권 거부로 표류중임은 물론이다.

'실종'의 시작은 윗물에서 비롯된다.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8시간 행방이 일단 묘연하다. 국회가 특위를 가동해 국정조사를 벌였지만 외려 '의문'만 늘어가는 형국이다.

정권 차원의 일관된 '모르쇠'에 새로 밝혀지는 게 없다. 국정조사의 '하이라이트'인 다음 달 초 청문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민국 '컨트롤타워'의 행방도 불명이긴 마찬가지다. 정부 위기관리 매뉴얼에도 '컨트롤타워'로 명시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미 스스로의 책임을 부인했고, 대변인과 비서실장까지 이에 가세했다.

닭이 울기 전 세 번 부인한 점은 꼭 빼닮았지만, 성경 속 베드로와는 달리 '회개'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방선거 직전만 해도 "도와달라, 확 달라지겠다"며 읍소하던 집권세력은 이미 실종됐다.

자식을 잃어 피멍든 가족들에 'AI' 운운하며 "가만 있으라"고 윽박지르는 그들만 남았을 뿐이다. 정권을 지탱하는 우익 세력은 서명대를 엎어가며 "누가 그 배 타라 했어" 식의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참사의 망각이요, 양심(良心)의 실종이다


사태 초반 총대를 메고 사의를 표명했던 국무총리는 엉겁결에 부활해 '국가 대개조'를 부르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기 후보자 두 명의 각종 치부만 수면 위에 떠올랐다.

마무리가 되면 물러나겠다지만 '늑장 구조', '특혜 구조'의 주 책임자인 해경청장도,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장관도 수염만 덥수룩 기른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착 의혹을 샀던 언딘도 슬그머니 철수했을 뿐, 별다른 조치가 있었단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존재감도 없던 안전행정부 장관 한 명만 갈아치운 모양새가 됐다. "내각 총사퇴"를 거론한 장관만 애먼 '면직 불똥'을 맞았다. 국민들이 이 정부를 보며 "책임을 다했다" 여길지 의문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331명을 입건하고 139명을 구속했다. 일견 '양'(量)은 많아 보이나, 들여다보면 '질'(質)은 초라하다. 대부분은 세월호 선원을 비롯한 청해진해운, 한국선급, 해운조합 직원 등이다.

참사 당일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로 진도VTS 소속 해경들도 포함됐다지만, '몸통은 실종'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책임과 단죄가 제대로 이뤄졌다 평가하기엔 어려운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권이 사실상 '궁극의 책임자'로 지목했던 유병언 씨는 진위조차 불분명한 변사체로 또다시 지목됐다. 참사의 실체적 진상 규명은 물론, 금수원 앞에는 왜 "우리가 남이가"란 현수막이 붙어야 했는지 모든 게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달라져야 했지만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 실종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실종했다. 책임과 단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난망해 보인다.

기실 이번 참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때 제대로 단죄가 이뤄졌다면 싶은 순간들이 너무도 많은 우리 근대사다. 단죄 없이 넘겨온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이제는 두꺼워 찢기도 힘든 '무책임'의 역사가 됐다. 가깝게는 녹조라떼와 큰빗이끼벌레가 소리없이 웅변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는 새롭지도 않다. 사지에 끌려간 학도군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독립 이후에도 끊긴 한강 다리 저편의 피난민들이 들었던 말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광복 이전과 이후'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100일째가 아닌, 최소 70년째 쉼 없이 진행되고 있다. 70년을 '가만히' 있었기에, 바로바로 잊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또 잊는 데 얼마나 걸리면 적당한가. 얼마면 되겠나. 차라리 100일도 길었는지 모를 일이다.

정작 추출이 필요한 건 '유병언 DNA'가 아니라, 이리도 해묵은 '무책임과 망각의 DNA'일 수 있다.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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