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위해 죽자"는 국정교과서 나올라

"역대 천황은 반도의 민초들에게 갓난아기처럼 애무육성하심으로써 오늘의 영예를 반도 민중에게 짊어지게 하신 성스러운 배려에 감격한다. 반도동포는 남녀노소 한결같이 이 광영에 감읍해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해야 한다. 군무에 복무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황국신민교육의 최후의 마무리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은 위에 소개한 세 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누굴 떠올리셨나요? 얼핏 '매국노'의 대명사 격인 이완용이나 박제순 같은 이를 필자로 지목하기 십상일텐데요. 그러면서 마음 속에 몇 마디 욕설이 벌써 지나간 분도 계실테죠.


하지만 이 글을 쓴 이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에도 우리 민족이 받들고 기려야 할, 특히 삼일절의 고귀한 정신이 깃든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사람입니다. 이쯤 되면 상당히 황당하시죠? 



그 주인공은 바로 백농 최규동(1882~1950)입니다.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로서, 대성 및 중동학교 등에서 수학교사와 교장으로서 후세 교육에 헌신했다". 그를 '이달의 스승' 1번 타자로 뽑은 정부의 설명입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16일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한국교원단체총회(교총)와 함께 '이달의 스승' 12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는데요. 당시 교육부가 발표한 올해 '12명의 스승'을 그대로 옮긴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3월 :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 최규동

△4월 : 식민지 농촌 수탈에 교육으로 대항한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5월 : 교육학자로 새교육운동을 추진한 오천석

△6월 : 명동학교를 세워 청소년·여성 교육에 힘쓴 김약연

△7월 :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김교신

△8월 : 독립만세운동, 국산품애용운동을 펼친 조만식

△9월 : 일제 강점기 후학 양성과 무궁화 보급 운동에 앞장선 남궁억

△10월 : 한글 대중화·근대화의 개척자 주시경

△11월 : 민족국가 수립 위해 희생한 안창호

△12월 : 국사교육으로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다 일본경찰에 의해 파면된 황의돈

△내년 1월 : YMCA를 창설한 여성교육운동가 김필례

△내년 2월 : 교육구국운동에 헌신한 이시열


◇누가 그를 '민족의 스승'으로 선정했는가


사실 명단 가운데 상당수는 국민 대부분이 공감할 만큼 민족의 '사도'(師道)로서 손색이 없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혀 언질이 없던 급작스런 명단 발표에, 당시 브리핑에 참석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일단 '왜 갑자기 이런 명단을 선정했는가'. 정부의 입장은 이랬습니다. "교권 침해와 명예퇴직 증가 등 교원 사기가 저하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훌륭한 스승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뭐, 공감할 수 있는 답변입니다. 우리 선생님들, 얼마나 마음 고생 많으십니까. 문제는 '누가 선정했는가'에서 불거졌습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10~11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훌륭한 스승을 추천을 받고, 교육 및 역사학계 인사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선정위원 면면을 묻자 "교육, 역사분야 교원 및 유관기관 전문가 9명"이라면서도 "본인들이 꺼려 하기 때문에 개인 신상은 밝힐 수 없다"며 공개를 일체 거부했습니다. 


아니, 전국 1만 2천여 초중고교에 대대적으로 홍보 포스터와 교육 자료를 배포하면서도, 누가 선정한 '우리의 스승'인지는 알려주지 않겠다니요. 쏟아부은 홍보 예산만도 3억 5천만 원이 넘는다면서 말이죠. 기자들의 십자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물론입니다.


집요한 추궁 끝에 교육부는 결국 "퇴직교장들의 모임인 삼락회 김정호 회장이 위원장"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나머지 8명은 이 시점까지도 끝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교총 관계자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현직 교사 등이 포함됐다는 사실 외에는 말이죠.


"이 12명의 일제 당시 행적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는가". 황당하다 못해 허탈함까지 밀려오던 브리핑 말미에 나온 마지막 물음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친일행위 관련 전문성 있는 기관을 통해 검증을 마쳤다"고 꽤나 자신감 있게 답변을 내놨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를 얘기하는 것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죽음으로써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뭔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달의 스승' 기사를 따로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여러 분들께 죄스럽기도 했지만요. 그러고나서 스무 날이나 지난 걸까요. '1번 타자'인 백농의 친일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백농이 1942년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에 일본어로 실은 <죽음으로써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란 글을 역사정의실천연대 등이 찾아낸 겁니다. 글 앞머리에 소개한 문장들이 그 일부죠. 내쳐, 글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진도 번역가가 국문으로 옮긴 글을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서 실었습니다.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 - 경성중동학교장 최규동>


오래도록 기다리고 바라던 조선동포에 대한 병역법 실시가 확정되어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쇼와 19년부터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조선동포가 내선일체의 이념에 눈을 뜨고 실로 국체의 본의(본래의 의의)에 귀일하여 진충봉공의 적성(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된 정성)을 피력해온 결과로써 폐하의 고굉(임금이 가장 믿는 중요한 신하)임에 족한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며, 공사를 불문하고 감사와 환희는 더 이상 여기에 비할 바가 없다. 


생각컨대 시정 이래로 30여 년 역대 천황은 항상 일시동인(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의 감사한 대어심(大御心)을 반도의 민초들에게 베푸시고 갓난아기처럼 애무육성하심으로써 오늘의 영예를 반도 민중에게 짊어지게 하신 성려(임금의 염려)의 광대무변한 진실로 공구감격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반도동포는 남녀노소 한결같이 이 광영에 감읍하여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하고 더욱더 자애분기하여 스스로가 자질향상을 도모하고 더욱 더 충혼으로써 성지에 부응하여 받들어야 한다.


사람은 의무를 지고 의무를 다함으로써 그 이상 더 없는 명예와 만족을 얻는 존재이다. 국방의 책무를 맡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며 또한 남아최고의 영예를 이루는 것이다. 이 숭고한 의무, 이 영예가 조선동포에게 부여되어 그 젊은 청년들이 용약하여 국방의 제일선에 달려 나가 참여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자칫하면 반도청년들 사이에, 병역에 복무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인입사안, 저미 등의 소극성이 보였지만, 이러한 경향도 이번의 획기적 시책인 징병제도 실시결정에 의해 활연불식되어, 문자 그대로 발랄한 의기와 자신감을 갖고 문무의 수련에 정진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 것이어서, 황국신민연성교육상 일대 추진력이 더해지고 촉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상황에 직면하여 군무에 복무하고 군인정신을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황국신민교육의 최후의 마무리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반도의 젊은 국민이 영광스러운 제국군인으로서 빛나는 황군의 전통을 이어받아 훈련받고 군인에게 내려주신 칙유를 받들어 전진훈을 일상행동의 규범으로서 실천궁행하고, 생사지경에 재빨리 몸으로 군인정신을 체득해 나간다면 과거 수백 년 간에 걸친 문약의 폐풍에 기인하는 바의 책임 관념의 결핍, 근기의 박약 등 여러 가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경향도 일소되고, 본래의 소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그때야 말로 참으로 내선 양 민족이 형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 일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징병제도 실시가 2개년 후의 가까운 장래에 절박해서 오늘 특히 교육에 종사하는 우리들은 참으로 마음을 크게 다잡아 분발하여 대처하고 밤낮으로 청소년학도를 지도함에 강고한 신념과 군인혼의 연성에 일로매진해야 한다.


◇교육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없길래…"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따르면, 백농의 친일 행적은 비단 이 글뿐만이 아닙니다. 일제는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서울 남산 중턱에 일왕의 신사인 '조선신궁'을 세웠는데요. 백농은 조선신궁의 중일전쟁 기원제 발기인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임전보국단 결성 때도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과연 백농을 '이달의 스승'으로 받들어 모셔야 할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백농은 이번 선정을 주도한 교총의 전신인 조선교육연합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판단은 어떠신지요.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휴일이던 8일 오후 늦게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최규동 선생은 선정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 친일 행적 여부를 포함해 친일인명사전 미등재 사실을 확인했다"며 "창씨개명 거부, 조회 때 우리말 훈시,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창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돼 선정됐다"는 겁니다.


아하, 이제 살짝 감이 오는군요. 그러니까, 친일인명사전을 살펴보니 이름이 없어서 안심하고 선정했다는 얘기였나 봅니다. 하지만 70~80년전 일제 치하가 아니라 불과 7~8년전의 '역사'만 떠올려 봤더라도 그리 방심할 문제는 아니었을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던 당시 각계각층에서 얼마나 핏대를 세우고 거품을 물었습니까. 국회에서 예산 전액 삭감은 기본이요, 소송은 또 얼마나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가요. 그리하여 간추리고 간추려진 명단이 친일인명사전입니다. 다시 말해, 사전에 이름은 오르지 않았지만 '단죄'되지 않은 친일파는 차고 넘칠 거란 얘깁니다.


◇이런 교육부가 '역사 국정교과서'라니…


그런데도 호기롭게 "검증을 마쳤다"고 장담하던 교육부, 논란이 불거지자 이렇게 해명합니다.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글이 발견됨에 따라, 최규동 선생을 포함한 이 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


덕분에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이달의 스승'들은 또다시 후손들의 검증 도마에 올라야 할 판이 됐습니다. 백농의 경우만 해도 '이달의 스승'만 되지 않았더라면, 숨겨져온 과거 행적이 이렇게 까발려지진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혹시 교육부가 내심 '역사 바로세우기'를 목표로 이번 사업을 추진한 건 아닌지, 살짝 기대감마저 이는 대목입니다.


만약에 교육부가 그런 '흑심'의 연장선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거라면, 찬성 여부를 재고해볼 여지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달의 스승' 선정 과정에서 보여준 교육부의 검증 능력과 행태 등을 볼 때, 국정교과서 강행이 여론의 동력을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이네요.


"천황을 위해 죽자"던 이들이 줄줄이 우리 역사의 위인으로 등재될 교과서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아무리 '광복 70주년'인 올해가 사실은 '청산되지 않은 70년'이라 해도 말이죠. 그 청산되지 않음을 기화로 부(富)와 권력, 정의와 가치관이 뒤바뀐 70년을 지내온 민족 아닙니까.


언제부터인가, "이제 그만 덮자"는 은근한 회유와 압박도 공공연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70년마저 우리 후손들에게 거짓과 왜곡, 반칙과 몰상식의 역사를 대물림해줄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이번 논란이 '국가백년대계'를 내다본 교육부의 '흑심'이었길, 별 기대감없이 기대해보는 까닭입니다.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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