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령탑'은 없다…국민 못 지키는 정부

40명 가까운 국민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는 일년전 세월호 참사와 맞닿아있다. 구조와 방역을 민간에 떠넘겨 피해를 키웠을 뿐, 제대로 된 국가 대처나 콘트롤타워는 실종됐다. 한국형 재앙인 '코르스'란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여전히 '진행형'인 참사의 악순환을 막는 열쇠는 진상 규명일 수밖에 없다. CBS노컷뉴스는 세월호와 메르스 참사를 통해 박근혜정부 3년차 국가재난 시스템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기획 <세월호 '코르스'를 낳다> 싣는 순서


①여전히 '사령탑'은 없다…국민 못 지키는 정부

②'밀접접촉'과 '에어포켓'…가설이 화 불렀다

③구조는 '언딘'에 방역은 '삼성'에…국가는 뭘했나

④사태 키운 '정보 은폐'…'유언비어' 칼날만

⑤국민에 '폭탄' 돌리는 정부…진상규명이 해답이다


"메르스 청정지역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환자들이 한창 나올 때도 여긴 휴업을 사흘인가밖에 안했는데, 우리 애는 그때도 열흘 넘게 학교에 안 보냈다".


세종시에 사는 전업주부 이모(40)씨는 7월의 아침도 매일같이 꺼림칙하게 시작한다. 등굣길에 나서는 초등 5학년생 딸에게 마스크를 챙겨 씌우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 TV에선 메르스 소식이 점점 자취를 잃어가지만, 마뜩치 않은 느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직도 저녁 회식 잘 안 하고, 주말에도 멀리 가는 건 피하는 편이다". 서울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신모(43)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천 중동 아파트에서 서대문 사무실까지 한 시간여 부대끼는 출근길 전철안 사람들도, 거래처 직원들도, 회식 자리의 동료들도 '밀접 접촉' 반경 안에 들어올까 자신도 모르게 신경쓰인다. 주머니에 손 세정제도 빼놓지 않게 됐다.


국내 메르스 첫 환자가 나온 5월 20일 이후 전국은 지난해 4월의 '진도 앞바다'가 됐다. 하릴없이 가라앉는 배 안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느꼈을 공포는 일년뒤 한반도 곳곳을 습격한 '일상'으로 확대됐다.


유입 이후 두 달도 채 안된 지금까지 이미 2백명 가까운 국민들이 감염됐다. 설마 21세기에, 역병에 죽을 거라곤 생각도 않던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순간에도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생과 사의 기로에 서있다.


일년전 배 안에서 스러져가는 생명들을 지켜보고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남의 일'로 여겼던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는 메르스는 어김없이 이들에게도 '목전의 위협'이 됐다. 생존 앞엔 좌(左)나 우(右)도, 노(老)나 소(少)도 없다. 


보이지 않아 위협적인 것은 바이러스뿐이 아니었다. 세월호에서 '학습 효과'를 얻은 국민들에게 정부의 역할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콘트롤타워가 없다"는 탄식은 온 국민의 레퍼토리가 됐다. 그래서 불안과 공포가 더욱 배가됐을지 모른다. 


국민 모두가 '심각'한데도 정부는 끝까지 '주의'만 했다. 세월호로 생긴 국민안전처조차 '심각'이 맞다는데도, 보건당국의 위기 경보와 인식은 여전히 '주의'에 머물렀다. 부총리가 수장인 교육부가 '경계'로 대응해도 꿈쩍 않으며 엇박자를 냈다.



일년전 "가만히 있으라" 해서 숨진 국민이 304명이었다. 9명은 여전히 가족들 품에 차가운 시신조차 안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야 할지,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할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시절이 됐다.


벌써 1만 6천명 넘는 국민들이 일상에서, 생계에서 2주씩의 격리를 당해야 했다. 그런데도 감염된 국민의 절반 이상은 국가 방역체계 바깥에 방치돼있다가, 열이 오르고 숨이 찼으며 때로는 끊어져야 했다. 


세금으로 짠 방역망과 구조망은 사실상 뚫리기 위해 존재했다. 하나뿐이어야 할 마지노선은 그때마다 그어지고 또 무너졌다. 공권력에 대한 공신력도 여지없이 붕괴됐다. '살려야 한다'는 A4용지 한 장만으론 다시 세우기도, 살리기도 힘들다. 


'중동 호흡기증후군'이란 이름이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은 유입 18일 만에 세계 2위의 감염자와 사망자를 낸 '방역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메르스'(MERS)가 아니라 '코르스'(KORS)란 얘기까지 나왔다.


두 달새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국격은 실추됐다. 막을 수 없던 사태도, 살릴 수 없던 사람들도 아니기에 참혹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열흘 넘게 방역망에서 빠진 채 병원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최모(70·여)씨는 확진 이틀만에 숨졌다. 평소 건강하다 '173번 환자'로 불리게 된 그녀의 아들 김형지(48)씨는 "국가와 병원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울부짖는다.


모두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일년째 얘기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쌍둥이처럼 그대로다. 진도항 종합상황실 칠판에는 '233번째 여학생 추정, 앞니 4개 탈락', '남학생 신장 178cm, 왼쪽 광대뼈에 점' 같은 A4 전단지가 매일 붙었다. 


열 달을 고민하며 지었을 이름들이, 이십년 가까운 삶과 기억들이, 칠십년 가까운 꿈과 미래들이 몰가치한 '숫자' 하나로 대체된 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었다. 최씨의 칠십년 인생이 '173번'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11년전 한 명의 국민이 중동의 무장단체에 피살됐을 당시 야당 대표가 했던 이 발언은 메르스 사태 내내 국민들 사이에서도 회자됐다.


이 야당 대표는 30개월전 유권자 75.8%의 51.6%, 다시 말해 국민의 39.1%가량이 선택한 '대한민국 콘트롤타워'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 발생 이후 열흘 넘게 지난 6월 1일에야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또 13일이 지난 6월 3일 주재한 긴급점검회의에선 "메르스로 인한 불안함에 대해 정부는 대처방안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6월 16일엔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심각한 것은 빨리 국민들에게 알려나갔으면 한다"고도 했다. 이튿날엔 민간 병원장으로부터 "대통령과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받아낸 뒤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주시기 바란다"는 말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통해 "방역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역할로 명확히 규정돼있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30개월전 이러한 방역과 구조, 즉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줄 중앙정부의 '콘트롤타워'를 선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콘트롤타워'가 국민들은 물론, 정부와도 '유체이탈' 했다는 사실을 세월호와 메르스 두 참사가 고스란히 보여줬다.


많은 국민들이 "메르스는 중동식 독감"이라거나 "손씻기 등만 잘 실천하면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을 보면서 '국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란 화두를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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