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벌금'과 '법질서 무시'…악순환의 끝은 언제?

"많이 버니까 몇백억 벌금쯤 우습게 여기는 것 아닌가."

거액 과징금 부과와 영업정지 등 정부의 '중징계'에도 불구, 이동통신업체들이 이를 무시하고 불법 행위를 자행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영(令)'이 서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수백억원대의 벌금을 '겁내지 않는' 이통사들의 행태는 이들의 수익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이에 따라 이통사들이 휴대폰 요금을 내려 소비자에게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커져가고 있다.


▽벌금만 1천억대…'그래도 우리는 이대로 간다?'▽

지난 7일 정보통신부 산하 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3사 및 KT에 대해 20~40일의 '영업 정지'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나름대로'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지난 2002년 이후 이통 3사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만도 무려 1084억여원. 이중 SK텔레콤이 617억원으로 가장 많고, KTF가 326억5천만원, LGT 141억3천만원 순이다. PCS를 재판매한 KT도 이 기간 92억여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그러나 이들 이통3사는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에도 아랑곳없이 지속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통신위원회 박승규 상임위원은 "이들 사업자에 수차례에 걸쳐 단말기 보조금 지급 중지를 요청하고 강도 높은 조치를 경고했으나 불법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지난 2월 27일엔 위원회 의결로 중지를 명령했으나, 명령이 나간 당일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천문학적 벌금에도 '끄떡없는' 이통사 수익구조▽

올 1/4분기 현재 시장 점유율 52.7%, 매출액 62%를 차지하고 있는 '지배적 사업자' SK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순이익만 무려 1조9천억원이다. 또 시장 2위 업체인 KTF는 지난해 4070억원, LG텔레콤은 780억원의 순익을 냈다.

특히 1위 업체인 SK텔레콤의 경우엔 번호이동성제도와 거액 과징금 부과 등의 악재(惡材)에도 불구, 올 1/4분기에만 벌써 4530억원의 순익을 냈다.

이들이 몇백억 벌금에도 아랑곳 없이 법을 어겨가며 마케팅에 치중하는 까닭도 이같은 '어마어마한 순익'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통3사는 올 1분기에만 8455억원을 마케팅에 투입했다. SK텔레콤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 증가한 4778억원, KTF는 40.7% 증가한 2371억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썼다.

1/4분기에 유일하게 257억원의 적자를 낸 LG텔레콤마저 1306억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투입했다.

▽휴대폰 이용자들 "영업정지 대신 요금이나 깎아라"▽

따라서 정보통신부의 잇따른 조치에도 휴대폰 사용자들의 반응은 냉담할 수밖에 없다.

'눈가리고 아웅' 식의 과징금 부과나 영업정지 조치 대신, 소비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수 있는 '요금 인하'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더 현실적 방안 아니냐는 의견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

특히 정부가 '단말기 보조금'을 불법으로 규제하면서, 소비자에게 돌아올 혜택이 고스란히 '과징금' 형태로 정부에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daefoecho'란 ID를 쓰는 네티즌은 동아닷컴 의견란에 "서민들만 혜택을 받지 못하게 법을 만들어놓고, 요금도 내리지 않고, 결국 업체들 이익만 남게하는 정책을 보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bongsa5603'은 "공룡 통신사들은 눈 깜짝 안한다. 워낙 이익이 많이 남아 벌금 몇 백억은 그야말로 껌 값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며 "정부에선 원가 계산을 확실히 해서 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bluetree2'은 "단말기보조금 지급 금지 정책은 정부가 중재·강요하는 '업종 담합'이자 '위헌적' 경제정책"이라며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 위배되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들도 '휴대폰 요금인하 운동' 움직임▽

시민단체들도 이같은 사용자들의 목소리에 적극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2년 7월부터 '휴대폰 요금 인하를 위한 100만인 물결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참여연대(공동대표 박상증·최영도·이선종)는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업체들 입장엔 전혀 변화가 없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참여연대 시민권리팀 이지은 간사는 "수백억원의 벌금을 내도 '남는 장사'란 인식이 업계에 팽배해 있는 것으로 본다"며 "요금 제도에 관한 근본적 법제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단체인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회장 김재옥)도 조만간 내부 검토를 거친 뒤, 언론사 등과 함께 '휴대폰 기본요금 인하 캠페인'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통3사 "투자 때문에 인하 여력 없다"▽

그러나 이같은 요금 인하 주장에 대해 이통3사는 "이미 작년과 재작년 요금을 내렸다"며 "매년 수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인하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 역시 '업계 투자 여력 확보'와 '공정 경쟁' 논리를 들며 현 수준을 고수하고 있어, 요금 인하 논란은 향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4-06-11 | donga.com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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