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토론]박정희 조갑제 진중권 만나다

세상을 뜬 지 25년. 그러나 지금 이 시각에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논의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 있다. 고 박정희(朴正熙·사진) 전 대통령이다.

'행정수도 이전' '친일진상 규명법'부터 최근의 '대한민국 정체성' '정수장학회' 논란에 이르기까지….

2004년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는 대부분의 논쟁이 그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영웅' 이자 '독재자'였던 그가 여전히 '향수'(鄕愁) 또는 '망령'(亡靈)의 이름으로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체 우리에게 누구이며, 그가 역사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또 우리는 그를 역사에 어떤 이름으로 남겨야 할 것인가.

동아닷컴은 '우파 논객' 조갑제(趙甲濟) 월간조선 대표이사겸편집장과 '좌파 논객' 진중권(陳重權) 중앙대 겸임교수에게 스물다섯 가지의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조 편집장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란 제목의 박정희 일대기를 통해 '영웅' 측면을 조명했고, 진 교수는 이를 패러디한 저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박정희의 '독재자' 측면을 부각시킨 바 있다.

진보(進步)와 보수(保守), 좌우(左右)의 날개로 본 박정희는 과연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 또 이들은 무엇을 근거로 '침을 뱉으라'는 것이며 '침을 뱉겠다'는 것일까.

두 사람의 동의하에 인터뷰 내용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벌이는 가상 토론 방식으로 재정리한다. 글의 형식상 '박정희 전 대통령'이란 공식 호칭은 모두 '당신'으로 통일했다.

▼조갑제·진중권, 박정희를 만나다

나 박정희요. 내가 떠난 지 2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내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더구먼. 임자들은 나에 관한 책도 썼다지? 내가 궁금한 게 많아. 이렇게 만났으니 어디 조목조목 들어봅시다. 조갑제 편집장이 먼저 얘기하고, 진중권 교수가 이어서 대답해보오.

- 우선 궁금한게 있구려. 임자들은 나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부르고 싶소?

"당신은 근대화 혁명가다. 근대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신은 혁명적 방법으로 근대화를 했고, 산업화를 통해 민주화가 될 수 있는 물질적·제도적 바탕을 마련한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그저 그런 제3세계 독재자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과대평가됐을 뿐이다."

▼"근대화 혁명가" vs "그저그런 제3세계 독재자"

- 좋소. 그럼 나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 생각하오?

재임 당시 포항제철소를 시찰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요약하면 부국강병이다. 부국강병을 통해 민주화가 가능한 울타리와 기반을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안전' '복지' '자유' 등 3가지다. 당신은 이 중 안전, 즉 안보와 복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세대에서 민주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을 민주주의를 짓밟았다거나, 민주주의를 역행했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단선적인, 일차원적인 시각이다."

"흔히들 당신이 이룩한 경제 발전을 공이라 얘기하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시장 경제란 게 정부의 시장 개입등으로 해석되는 게 아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한것처럼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잘못이다. 그건 원시적인 의미 부여다. 경제 발전 5개년계획이란 것도 이미 민간 정부에서 나왔던 것이고, 당시 저축률과 교육률이 높았다는 것도 한국적 특수 상황에서 얘기해야 한다."

▼"功이 90%" vs "功은 별로 없다"

- 흐음, 그렇다면 나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오?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인권 탄압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민주주의 기반이 약한 나라에서 근대화를 추진하다보니, 또 '권력의 남용'이 계속돼온 한국의 고질적 문화 속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공에 비하면 적긴 하지만 과거사 기록 측면에서 다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이어갈 후계 체계를 만들지 못한 것도 정치적 과오다. 당신에게는 자주적인 근대화 철학이 있었다. 그것을 당신은 '한국적 민주주의'라 했다. 이것을 계승할 집단을 만들지 못해 단절돼버렸다. 나는 당신의 잘못은 10%, 잘한 것은 90%라 생각한다."

5.16 직후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사관생도들의 '혁명 지지' 시위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박정희 소장.

"군사문화다. 18년간 당신이 사람들 머릿속에 주입한 군사문화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재생산되기까지 한다. 무형의 피해가 엄청나다. 소통 시스템 자체가 근대식으로 유지되다 보니, 시장 경제나 시민사회와 안 맞게 된다. 소통의 폭력성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가 외국 가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가장 먼저 물어보고, 그 나라 GNP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GNP와 비교해 등호, 부등호를 대입한다. 당신 때문에 생긴 사고방식이다. 사람 만나는게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만이 유일하다. 천박한 산업사회의 모순이다."

- 임자들은 나에 관해 책을 썼던데, 그 책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대체 무엇이오?

"당신의 말을 제목 삼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란 책을 썼다. 지금 8권까지, 1968년 일까지 썼다. 1979년 10월 26일 상황까지 11년치를 더 써야 한다. 10권이 완결편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에 관한 전기이자, 당신이 있던 시대의 이야기다. 당신을 중심으로 뭉쳐서 근대화, 즉 '국민 국가 건설'을 이뤄낸 우리들과 우리 선배 세대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고도 성장을 최소한의 인권 탄압과 인명 손실로써 이룩했다. 이것은 신라 통일에 이어 우리 민족사에 두번째 가는 금자탑이다. 후손들이 읽을 때 가슴 두근두근하는 감동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란 책을 썼다. 조 편집장이 쓴 책의 제목을 패러디했고, 두 권짜리다. 1998년 책을 펴낼 당시, 솔직히 위기의식을 느꼈다. 조 편집장 같은 사람들이 네오나치나 할 법한 발언을 많이 했다. 광의식이나 집단숭배 또는 '인권 좋아하시네' 같은 말이 신문 머릿제목을 장식하는 상황을 보면서 내가 받았던 충격이 엄청났다. '이걸 가라앉혀야겠다'고 생각해 맞불을 놓은 건데, 오히려 내 책이 더 많이 팔렸다. 주제는 한마디로 당신은 그저 옛날 사람일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뭐가 잘못되면 원인을 찾는게 아니라 범인을 찾고, 뭐가 잘되면 그 배경을 찾는게 아니라 은인을 따지는데 익숙하다. 이건 봉건적인, 아니 샤머니즘적이기까지 한 사고방식이다.그걸 경계한 것이다."

▼"친일법 자체 반대" vs "조사범위 확대해야"

- 요즘 친일진상규명법 조사 대상에 나를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떠들썩하다지?

만주군 예비소위 시절의 박정희.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본과를 졸업한 뒤 소위로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말 찍은 사진이다.

"그 법 자체에 반대한다. 실효성이나 의도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걸 국가기관에서 할 일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이 할 일을 국가 권력이 하면 반드시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게 되고, 정적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이용하게 된다. 지금와서 당신이 친일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은 지난 60년동안 우리가 놀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보지 않는 한, 당신을 친일파라고 생각할 순 없다. 당신이 친일파라면 나는 매국노란 얘기도 한 적 있다."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당신은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으로 관동군 소위까지 했는데, 관동군이란 부대의 성격이 무엇이냐.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첨병 아니냐. 이사람들이 만주국도 만들고, 그런데서 소좌로 복무했다는 건, 또 징병도 아니고 자신이 혈서쓰고 자원한 것 아니냐. 조사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어차피 조사 기준이란 인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요 행위자, 주요 친일파들을 포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 내가 일본 관동군 소속으로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어떻게 생각들 하나?

"당신의 친일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얘기를 많이 한다. 관동군이 아니라 만군이다. 만주국이란 일본의 괴뢰국에 생긴 군대가 바로 만군이다. 당신은 만군 장교로서 열하 지역에 근무하면서 주로 모택동의 군대인 팔로군과 싸웠다. 팔로군은 중국 독립군이라 볼 수 있지만, 조선 독립군이라 볼 수는 없다. 모택동 군대는 공산군 아니냐. 일본도 나쁘지만 모택동 군대도 우리로선 적이었다. 모택동 군대를 토벌한 것이 나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국적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택동 군대가 1950년 10월에 우리 나라에 개입해서 우리의 통일을 저지한 것 아니냐. 당신을 욕할 근거가 될 수 없다."

"나는 맞는 얘기라 본다. 관동군이란 중국의 팔로군과 싸운 부대이다. 제국주의 침략 정책의 핵심이었다. 관동군은 한편으론 무장단체들과 싸웠다. 팔로군엔 무장단체나 독립투사들이 소속돼 있었다. 독립투사들이 독자적 군대를 결성하기 힘들기 때문에 무기를 얻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공산주의자라 들어간 게 아니라 민족 해방을 위해 싸운 것이다. 중국 국기의 다섯 별 중 하나가 조선족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남로당 가입 이해" vs "기회주의자 속성"

- 임자들은 내가 남로당 군사부장을 지낸 걸 알고 있겠지?

"당신은 기본적으로 반골 이념을 갖고 있다. 가난한 농민의 집안에서 자라서 항상 가난한 사람, 억눌린 사람의 편에서 사물을 본 사람이다. 그런 기질에다 당신의 형인 박상희씨가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1946년 10월 폭동 때 경찰 총격으로 죽었다. 그 복수심도 있었을 것이다. 이 무렵엔 한국에서 공산당에 대한 진면목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좌경화되고 있었다. 당신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반골정신과 가족의 비극에 사회 분위기가 겹쳐져 남로당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공산당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당신의 남로당 가입을 충분히 이해한다. 정말 비판할 사람은 6·25를 겪고도 좌익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다."

"당신은 기회주의자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내에서 정통성 문제가 제기됐다. 친일파 때문이다. 김구 선생이 정권을 잡았으면 큰 문제가 없는데, 이승만이 잡아서 문제였다. 남한이 혼란에 빠진 반면, 북한은 차근차근 개혁 작업을 진행해, 체제 우위에 있었다. 당시 75%가 스탈린주의뿐 아니라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까지 포함해 좌익에 찬성했다. 당신 역시 '아 사회가 넘어가는구나' '대세구나' 이렇게 판단해서 간 것이겠지. 당신의 형인 박상희씨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개방정책이 민주화도 기여" vs "뻔한 제3세계 정책"

- 내가 이끈 수출지향적 경제성장 정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이 있었겠소?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 맨오른쪽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한 개인한테 모든 역사적 공과를 넘기는 건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의 역할이 거의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인들은 원래 정권 잡으면 민족자본 운운하며 폐쇄 정책으로 가게 돼있다. 그러나 당신은 과감하게 개방정책을 썼다. 60년대초에 세계를 겨냥해 수출 드라이브쪽으로 갔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엄청난 목표를 세웠나 싶다. 그런 나라가 많지 않다. '매판 자본'이란 욕을 먹어가면서도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강행한 것, 우리로선 행운의 선택이었다. 당신의 '개방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개방 정책'을 쓰는 나라는 결국 민주화에 기여하게 된다. 모택동이나 김일성처럼 폐쇄 정책을 쓰면 반드시 전제주의로 가게 된다."

"경제정책이란 군바리 하나가 아니라 엘리트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당시 제3세계가 결정할 수 있는 정책이란 게 뻔하다. 소설가 이인화씨 경우 당신을 500년에 한번 날까말까한 지도자라 했는데,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사는게 500년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우연으로 결정된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도자가 됐더라도 당시 우리 경제는 발전했을 거란 얘기도 있던데…

"그건 거짓말이다. 북한과 비교해보면 안다.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한 북한은 왜 300만이 굶어죽는 최악의 국가가 됐고, 대한민국은 인간개발지수 28위에 드는 좋은 나라가 되었는가. 그것은 김일성과 당신, 두 지도자의 역할을 빼곤 생각할 수 없다. 김일성이 남한의 지도자가 됐어도 이렇게 남한이 발전했겠는가. 물론 당신 혼자서 다 이뤘다고 얘기하면 안된다. 당신과 국민의 공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보단 당신의 공이 크다. 당신은 쿠데타를 통해 힘을 만들었고, 그 힘을 부국강병을 만드는 쪽에 이용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김일성은 당신보다 힘이 많았지만 남침 준비하고, 인민탄압하고, 우상화하는 데 힘을 썼기 때문에 부국강병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 잘하고 못하고 여부가 경제성장률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본다. 경제성장을 예측할 때 대통령의 통치 행태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명 소중히 여긴 사람" vs "쿠데타로 민주주의 싹 꺾어"

- '유신 독재'와 '인권 유린'을 비판하던데, 임자들 생각은 어떻소?

"당신은 소박하고, 겸손하고, 결단을 내릴줄 알고, 눈물이 많고, 수줍음을 타고, 유교적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18년동안 집권했어도 정치적 암살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으켰다. 세계사에서 단 한 사람의 정치적 암살도 없이 이렇게 만들어낸 지도자는 없다. 그 시대에 있었던 언론탄압이나 권력남용에 의한 폐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있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당신에게만 모두 돌리는 건 옳지 않다. 지금도 우리가 완벽한 언론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지만, 이 책임을 모두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공도 당신과 국민들이 나눠가져야 하고, 과도 마찬가지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온 게 사실이다. 1960년대 들어 한국에 4·19혁명이 발생했다. 민중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한 집단 정치행위를 한 건 프랑스와 영국등 몇 나라 안됐다. 위대한 전통을 가진 민족인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언론 논조도 크게 달라졌다. 그 이전엔 상당히 '리버럴'했다. 4·19혁명 이후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당신의 쿠데타가 이를 다시 꺾고 들어온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 '개인을 위한 독재가 아니라, 국민과 민족을 살리기 위한 독재를 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지?

"1972~1979년 사이의 당신은 '독재자'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때 정치적 자유와 언론자유는 많은 제약을 받았다. 당시 기자생활했던 나도 기억하는데 대통령 비판이나 군대 비판, 정보부 비판은 상당히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일상적인 행정 비판, 여당 비판은 모두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 당신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역사로부터 심판받겠다는 자세로 국력을 집중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 유신 시절에 비로소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독재는 다 국민과 민족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어느 독재자가 자기 혼자 먹고살겠다는 명분을 내걸겠나. 이러한 주장은 네오파시즘에서나 할 얘기다."

▼"하나회 긍정적요소 있다" vs "신군부는 그의 嫡子"

- 나의 가장 큰 죄악이 신군부라는 사생아를 남긴 것이란 비판도 들었다네.

"우리가 어떤 역사를 평가할 때 '사생아' 같은 비유를 쓰면 본질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당신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육사 출신의 핵심 인물들을 모아 하나회를 만든 건 사실이다. 이는 당신의 의도였던 아니였던 간에, 당신이 죽은 뒤 권력 공백상태가 왔을 때 전두환·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잡는 기반이 됐다. 전두환이 12·12사태나 5·18을 통해 피를 뿌리며 집권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단임제를 실천했고 6·29선언을 연출해 민주화로 갈 수 있는 평화적 기반을 만들었다. 1980년에 김종필·김영삼·김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면, 민주주의 발전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경제는 전두환·노태우 시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가 발전 못했다면 결국 민주주의도 약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사생아가 아니라 신군부는 당신의 연장선이자, 적자(嫡子)라고 봐야 한다. 그놈들이 그놈들이다. 5·16을 계기로 군대의 성격이 바뀌었다. 그 이전만 해도 군대는 '시민 통제'(civil control) 하에 있었다. 예를 들어 계엄령이 내리고 발포 명령이 떨어져도, 군은 실제로 집행하진 못했었다. 이러한 군대가 당신 이후 신군부에 이르기까지 일제식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최대 라이벌 "김일성" vs "김대중"

- 임자들은 나의 최대 라이벌이 누구라고 생각하오?

"당신의 가장 큰 라이벌은 역시 김일성이었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은 김대중이다. 김일성이나 필리핀의 마르코스같은 사람들도 거론되긴 하지만 다 멀리 있고, 김대중은 당신의 정권을 뺏어갈 수도 있었으니까."

▼박정희 향수 "어제오늘 일 아냐" vs "엉뚱한 기대감"

- 아직도 나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이 무척 많더군.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들 하시오?

"당신의 높은 인기는 집권 이후 계속되어온 현상이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집권 초기부터 끝날 때까지 항상 당신의 지지율은 50%를 넘었다. 이게 갑자기 뉴스가 된 건, 1990년대 중반부터 지식인 사회에서도 당신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해서다. 지식인들이 일반 대중의 판단을 뒤쫓아간 것이다. 당신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지식인 사회가 김영삼 정부의 실패를 보고 다시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신드롬'이란 말도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지역, 세대에 관계없이 당신을 좋아하는 국민은 항상 70% 이상이다. 나는 가끔 '우상 숭배에 가까워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존경하는 인물 순위를 내도 당신이 거의 1위인데, 이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상대적으로 당신 못지 않은 업적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한다."

"경제가 안될 때 그런 것이다. 내가 위기감을 느껴 책을 쓸 때도 IMF 직전이었고, 뭐가 안될때 사람들은 향수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 IMF 같은 경제 위기가 지나면 쭉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고 하는 식이다. 당신 때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완전고용 신화가 있었다. 경제가 나쁠 때마다 사람들이 엉뚱한 기대감을 갖는 것이다. 앞으로도 경제가 힘들어지면 당신에 대한 향수가 항상 터져나올 것이다. 러시아의 '스탈린 향수', 독일의 '네오나치즘'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 요즘 인터넷이란 게 생겼더구먼. 거기서 내 사진과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인간적 면모가 부각되고 있던데…

감을 깎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이 사진은 최근 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도 당신이 노래하는 동영상을 봤다. 그게 당신이란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노래하다 멋적어 웃기도 하고 중간에 중단하기도 하는데, 당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당신을 무섭게 생각했다. 가까이 있던 사람은 소박한 걸 알고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당신이 소박하고 겸손하다는 걸 죽고난 뒤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이다. 당신은 전형적 한국인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장점과 단점을 다 갖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이룩한 업적을 생각하면 초인이고, 인격을 보면 그야말로 서민이다. 다행스러운 건 당신이 10·26사건때 좋은 모습으로 죽었다는 점이다. 총을 맞고도 '난 괜찮아' 하며 당당하게, 차분하게 본연의 모습을 보이며 죽음을 맞았다. 시저가 암살 당할 때 얼굴을 가리며 '브루투스 너마저' 했던 것처럼, 또는 화장실로 도망간 차지철처럼 했다면 이렇게 인기가 높지 않았을 것이다. 영웅의 죽음, 초인의 죽음이었다."

"부정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경제가 어려운건 펀더멘탈의 문제이지, 정치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다. IMF는 김대중이 대통령이었더라도 왔을 것이다. 구조적 문제였다. 더이상 당신 시대의 완전고용사회는 도래하지 않는다. 당신에 대한 향수는 미신일 뿐이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권위주의 정부로 다시 가자는 것이냐. 최소한 전국민의 50% 이상이 당신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고 본다면, 이는 큰 문제임과 동시에 언론의 책임 또한 크다. 언론이 앞장서서 미신적 요소임을 얘기하고 깨우쳐 나가야 하는데, 그걸 타고 놀며 즐긴다. 언론은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시해야 한다."

- 2007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지? 만약 내가 살아나서 출마한다면 임자들은 표를 주겠소?

"떨어져야 한다. 당신이란 존재는 한국사회에서 1960·1970년대에 필요했던 지도자다. 1980년대만 해도 당신의 리더십은 통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던 그때 나타난 것이다. 또 그 시대를 준비한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다행은 당신의 죽음이고, 북한의 불행은 김일성의 장수다. 당신의 죽음은 딱 적당한 시기에 이뤄졌다."

"당신은 아마 2007년에 출마 안 할 것이다. 쿠데타를 했으면 했지. 만약 당신이 출마하더라도 난 투표권이 없을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을테니까."

▼"박근혜는 후광과 자신의 실력 겸비" 한목소리

- 좋소. 이제 내 딸 얘기를 해보지. 내 딸이 제1야당의 대표 자리에 올라있던데, 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 딸 자신의 실력으로 얻은 자리 아닌가. 누가 시비하겠나. 물론 당신의 후광이 없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

"별 특징있는 사람은 아니라 생각한다. 당신의 후광을 입은 것도 있고, 과거의 향수에 힘입은 바 크지만 '박정희 코드'만으로 대표가 됐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김용갑·정형근 코드' 이른바 '삼공·오공 코드'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내 소장 개혁파들과 함께 가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박정희 코드'로 가면 망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 당신들은 내가 딸의 정치적 성장에 영향력을 크게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박정희 전 대통령.

"크다고 본다. 그러나 크다고 해서 박 대표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인기나 영향력을 깎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떤 실력을 보일 수 있는가 그걸로 평가해야 한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현직 대통령 또는 여당이 야당 대표의 죽은 아버지 문제를 들고나와 정치적인 쟁점으로 삼지 않는다. 박 대표가 당신을 둘러싼 친일 논란, 유신독재 논란에 흥분하지 않으면서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일진상규명법을 만들어 당신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아무리 당신을 깎아내리려해도 바위에 계란치기다. '누군가 박 대표를 키워주고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려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이번 총선때도 톡톡한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 한나라당엔 큰 공헌을 했고, 사실 민족에 대해선 공헌한 게 뭐 있겠느냐. 박근혜 없었으면 총선에서 초토화됐을 것이다. 친일문제나 대한민국 정통성 같은 얘기 꺼내는 건 이해가 안된다. 당내 입지 강화용 같은데, 적어도 열린우리당과의 경쟁력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당신에 대한 향수의 근본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당도 야당도 한심하니 국민들이 당신을 찾는 것이다. 만약 박 대표가 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나 반사에 일차적·표피적으로 편승해선 여당과의 싸움에서 백전필패할 것이다."

▼박근혜 대권가능성 "노력 여하" vs "40% 미만"

- 임자들은 내 딸이 나의 뒤를 이어 대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지금부터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여기까지 온 것은 당신 도움이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얼마나 확실한 리더십을 심어줄 수 있느냐, 특히 남북 문제 이념 대결에 있어서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놓고 행동할 수 있냐, 이런 것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예컨대 최근 한나라당이 보여준 국민 배신 행위가 몇 가지 있다. 의문사위 제3기 출범 발의에 원모 의원등 9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동참했다. 이것은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정당에서 절대로 해선 안될 일이다. 최근 박 대표가 6·15선언을 높게 평가한다는 얘기를 자꾸 한다. 물론 6·15선언도 공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부분을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총체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고 본다. 오늘 한국에 일어나고 있는 대혼란을 애국세력에선 '적색 쿠데타가 아니냐'며 걱정한다. 이 대혼란의 출발점이 6·15선언이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이 파놓은 함정에 대한민국을 끌고가 같이 빠져버린 것이다. 거기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도 6·15선언에 대해 엄정히 평가하지 않고 높게 평가한다는 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나 국민들의 생각과도 맞지 않는다."

"박근혜 아니라 누가 나와도 한나라당의 차기 집권 가능성은 40% 이하다. IMF위기때 이미 수권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5년만 기다리라 했는데, 집권조차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혁도 제대로 안되고 있고, 오직 열린우리당 못하는 것만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여당내에서 '30년 집권 시나리오' 얘기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10년 정도 가면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심어지고 기반이 생긴다. 기업들이나 이런 곳도 5년은 기다리지만, 10년이면 메이저가 마이너로 바뀌는 것이다. 관계 개선도 물론 이에 맞춰 하게 된다. 살기 위해선 개혁을 부르짖는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정책은 별 차이가 없다. 결국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한나라당이 하는 것중에 우리당이 못할 게 없고, 우리당이 내세우는 것중에 한나라당이 못할 게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개혁 경쟁을 통해 개혁 이미지나 얻어오는 게 훨씬 낫다. 내가 당신의 딸이라면 친일이나 정체성, 이런 싸움에 안들어간다. 남는게 없는 싸움이다."

- 내 딸이 "아버지 친일 문제 자신있다"고 얘기했다고 하던데…

"친일 안한 사람보고 친일이라 하니까 자신있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엔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강압에 어느 정도 순응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다. 죽음이냐 삶이냐의 선택이었다. 조국과 일본이 있었는데 일본에 붙어먹었다면 그것은 반역자다. 처단해야 한다. 그러나 조국이 없었을 때 아닌가. 진짜 친일은 해방 이후에도 일본 천황을 모신다거나 하는 사람이다. 친일이라 규탄받는 대부분은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강제된 상황에서, 또는 정보 부족으로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오판을 한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가 친일보다 급하게 해야 할 건 친북, 반민족, 반인도 범죄자를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일이다. 친일은 과거완료형이지만, 친북은 현존하는 위협이다."

"관동군에 들어가 있었지만, 소위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었겠느냐 하는 판단을 가진 것 같다. 또 독립군 토벌일지나 이런 구체적 물증 확보가 되겠느냐 하는 판단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 정도에서 방어가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는 것 같다. 요지는 자기 얘기가 아니라 아버지 얘기라는 것이다. 사실 공당의 대표라면 개인적 소회뿐 아니라 민족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당신의 친일 문제는 더 뒤져봐야 이미 나올 게 다 나왔고, 단지 의미는 국가 차원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라이벌 "그 자신" vs "손학규와 이명박"

- 그럼 내 딸의 가장 큰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박근혜 그 자신이다."

"손학규와 이명박이라 생각한다. 아직 당신의 딸은 당내 차원에 머물러 있다. 이회창씨야 다시 돌아오지 못하지 않겠느냐. 그래도 격조 같은 걸 따지는 사람인데 번복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 지금 정치하는 이들 가운데 나랑 비슷한 사람이 혹시 있소?

"없다. 당신이란 사람은 시대가 만든,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가 만든 인물이다.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당신 같은 인물은 또 나오기 힘들다. 당신보다 잘난 사람이 안 나온다는 뜻이 아니다. 남북 통일기에 나올 것이다. 이승만과 당신에 이어 제3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얼굴이나 옷차림은 이인제가 흉내낸 걸 봤다. 사실 더 이상 당신 스타일로는 정치하기 불가능하지 않느냐. 불도저식, 밀고나가기식 카리스마를 따지면 이명박이 비슷한 거 같다."

▼盧대통령과의 가장 큰 차이 "말" vs "리더십"

- 노무현 대통령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오?

"당신은 말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다. 비교적 정직하게 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자기가 실천 가능한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 점이 다르다."

"폭력적인 비교다. 1970년대의 당신과 21세기의 노무현을 비교하면 당신이 억울할 것이다. 개인의 차이점보단 리더십의 성격이 바뀌었다. 당신은 혼자 다하려는 스타일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얻어맞으면서 하겠다는 스타일이다. 두 사람의 차이보단 시대의 차이, 시스템의 차이라 본다. 노무현이 만약 1970년대 정치가였다면 지금보단 훨씬 권위적이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나마 논쟁을 하려 하는 스타일이고, 당신은 오로지 효율성만을 따지는 사람이란 점도 차이가 있다."

- 그럼 닮은 점은 무엇이오?

"빈난(貧難)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은 같다."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정통성 "역대 정권 모두 있다" vs "만주국에 있지 않다"

- 자, 이제 그럼 마지막 질문을 던지겠소. 요즘 여당에서 '만주군관학교와 4·19를 짓밟은 5·16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아니다'라고 했다지? 이에 대해 임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소?

조갑제 편집장(왼쪽), 진중권 교수.

"정통성의 기준은 결국 남북한 대결에서 나온다. 남북 대결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어느 쪽이 7천만 민족을 대표하는 국가냐 하는 문제는 어느 쪽이 그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이로 볼때 대한민국에 정통성이 있다. 이 국가 정통성을 전제로 얘기할 때, 역대 정권에 정통성이 없다고 얘기하는 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은 없다. 역대 정권 모두 정통성이 있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단선적으로 평가해선 안된다. 역사는 영욕이 함께 하는 것이다. 순백의, 처녀막 같은 역사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

"당신의 딸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얘기해선 안된다. 당신이 친일파로서 히로히토를 모셨고, 남로당 간부로 김일성을 모셨고, 자유민주주의를 거슬러가며 쿠데타를 했고, 재임 기간엔 미국을 상전으로 모셨다. 어느 점을 봐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연결되는 부분이 없다. 우리 헌법을 보면 상해임시정부에 법통이 있지, 만주국에 있는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몽땅 부정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2004-08-04 | donga.com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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