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주성…J노믹스 '절반의 성공'

"이제 우리 정부 남은 2년 반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혁신적이고, 포용적이고, 공정하고, 평화적인 경제로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반환점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후반 경제 정책 방향을 이렇게 요약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인 'J노믹스'의 3대 축 가운데 '혁신'과 '공정'이 언급됐지만, 사실상 대표주자였던 '소득주도성장'은 '포용'이란 용어로 대체됐다.

당초 J노믹스는 중산층과 서민의 소득을 끌어올려 내수 촉진을 이끌고, 이를 경기 진작의 선순환으로 정착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 구상이 골간이었다.

지난해 시정연설 때만 해도 문 대통령은 "함께 잘 살기 위한 성장전략으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추진했다"면서 소득주도성장을 2번, 2018년 시정연설 때는 3번을 강조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여러 정책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 최저임금 인상이 재계와 보수세력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각종 경제지표까지 악화되면서 사실상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

소득주도성장이 내건 기치를 '포용'이란 용어가 흡수했다 하더라도 가장 뼈아픈 지점은, 빈부 소득격차가 한층 심화되고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오히려 더 팍팍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 분배지표인 5분위 배율은 2015년만 해도 4.19배였지만,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엔 4.73배, 지난해 2분기엔 5.23배, 올해엔 2분기 기준 5.30배로 꾸준히 치솟고 있다. 상위 20%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이 하위 20%의 5.3배란 얘기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분기 기준 132만 5천원으로 일년전에 비해 제자리에 머문 반면, 상위 20%인 5분위는 943만 6천원으로 3.2% 더 늘었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소득이 일년새 3.8% 증가하며 2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지만, 그 이면엔 그늘이 짙게 깔려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나마 또다른 분배지표인 '팔마비율'은 올들어 2분기 연속 개선됐다. 소득 상위 10% 인구의 소득점유율을 하위 40% 인구의 소득점유율로 나눈 값인데, 1분기엔 1.46배, 2분기엔 1.35배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든 분위 소득이 증가한 가운데 2~4분위 중간계측 소득이 전체소득에 비해 높게 증가했다"며 "중산층이 두텁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5분위 배율로는 파악하지 못하는 긍정적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하위 20%인 1분위 계층의 살림살이가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이 부쩍 강조해온 '포용'과 '사회안전망'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움을 방증한다.

여권 한 관계자는 "어떤 정책이든 제대로 된 효과가 가시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도, 이른바 낙수(落水)론자들의 반발에 밀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너무 쉽게 접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소득향상→내수촉진→경기진작의 '분수 효과'에 제대로 물을 댈 시간도 없이 몇몇 대기업 중심 수출에 의존해온 기존 '낙수 효과'로 다시 무게중심이 옮겨갔고, 여기에 미중·한일 무역갈등 같은 대외요인이 덮치면서 좀처럼 경기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정부 출범 초반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경제 구조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간 정책 주류를 이끌어온 낙수론은 성장률 하락과 최저임금 인상 좌초 등을 빌미로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여전히 기세등등한 상황이다.

낙수론으로 다시 기운 경제 정책의 기조는 '혁신'이란 한마디에 함축된다. 문 대통령의 지난달 시정연설에서도 '포용'은 14회 언급된 반면, '혁신'은 20회 거론됐다. 지난해만 해도 '포용'이 18회 거론될 때 '혁신'은 12회 언급된 수준이었지만, 정책의 방점이 역전됐음을 시사한다.

문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대해서도 "우리 경제의 '혁신의 힘'을 키우는 재정"을 첫째로 꼽으면서 "우리 사회의 '포용의 힘'과 '공정의 힘'을 키우는 재정"이란 언급은 그 뒤에 뒀다.

일단 정부는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 활력 제고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경제기구와 신용평가사들도 확장적 재정정책 집행을 권고하고 있는 만큼, 내년 총지출을 올해보다 9.3% 늘려 513조 5천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재정과 경제력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매우 건전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야당이 문제 삼는 국가채무비율 역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10%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40%에도 못 미치는 데다, 재정건전성 역시 최상위 수준이란 점에서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확장재정 드라이브 역시 야권 등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게 변수다. 세수 감소가 불을 보듯 뻔한 데도 정부가 무리한 '퍼주기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까지 재정적자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중이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26조 5천억원,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57조원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1999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적자 규모다.

다만 정부는 "4분기에 총수입 증가가 예상돼 재정수지 적자가 축소되면 연말엔 정부전망치인 통합재정수지 1조원 흑자, 관리재정수지 42조 3천억원 적자 수준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전반적으로 일자리 등에서 정책 효과가 잘 안 나고 있는 만큼, 좀더 적극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관리재정수지가 적자이니 적극적 재정이라고 방어할 수 있지만 사회경제적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도 "정부가 그동안 너무 재정을 긴축적으로 사용해온 게 사실"이라며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경기가 자칫 수직낙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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