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사찰, '무서운' 거짓말

이명박정부의 '무도함'은 그 끝이 어디인가. 국기를 뒤흔든 민간인, 언론 불법 사찰의 구체적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엉뚱한 궤변만 늘어놓으니 하는 말이다.

공정방송 복원을 위해 파업중인 KBS 새노조가 폭로한 '민간인 사찰 문건'은 가히 만인공노할 이 정부의 추악한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노조가 입수한 2619건의 문건 가운데 충격적 '핵심'을 담고 있는 문건은 이명박정부때 작성된 481건이다. 이 가운데 민간인이나 민간 단체를 사찰한 문건은 86건, 언론인이나 언론사를 사찰한 문건도 19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미 2년전 진실이 드러난 '김종익씨 불법 사찰' 한 건만도 정권을 내놓을 사안일텐데, 집권 4년 내내 전방위적 사찰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인 셈이다.

 

실제로 이번에 드러난 사찰 문건이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5개팀 25명 가운데 '단 한 명'으로부터 나온 자료일 뿐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 심각성을 헤아릴 수 있다. 그마저도 청와대 지시로 '디가우저'까지 동원한 대규모 증거 인멸이 이뤄진 연후 아닌가.

'감찰'을 하겠다던 곳이 이럴진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가정보원이나 기무사, 각종 사정기관들의 '사찰'은 또 어떤 수준일지 미뤄 짐작할 만하다. 

'양'을 떠나 불법 사찰의 '질'까지 살펴보면 더욱 숨막히고 기막히다.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판단하면 수단과 방법과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표정까지 보이는 지근거리에서 분(分)단위로 꼼꼼하게 뒤를 캤다는 것이다.

촛불집회나 용산 참사, 4대강 반대에 관계된 인사들은 물론, 인터넷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만 써도 'BH 하명'이 뒤따랐다. 공직자 감찰이라는 명목과 달리, 전 정권 임명 인사들도 주요 사찰 대상에 올랐다. 심지어 청와대는 연예인들에게까지 '좌파' 딱지를 붙여 내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특히 언론인에 대한 불법 사찰은 충격적이다. 역시 'BH 하명'으로 분류된 <KBS YTN MBC 임원진 교체방향 보고>라는 사찰 문건은 작금의 방송사 연대 파업이 이명박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YTN 개혁에 몸바칠 각오가 돋보인다"는 배석규 사장이나 "MB 고향인 포항 출신을 인사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KBS 친정체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김인규 사장 등은 자신들이 섬기던 정권의 사찰 문건을 통해 '열린사회의 적들'임을 입증했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80%가 노무현 정부때 작성된 사찰 문건"이라며 진실 호도를 꾀하고 있다. 도대체 이명박정부의 '무지함'은 그 끝이 어디인가. 경찰이 작성한 통상적 '감찰' 문건과 초법적 탈법적 '사찰' 문건을 분간 못할 정도로 우매한 국민들을 통치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인가. 

'더러운 사찰'로 규정하면서도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불법 사찰했다"는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인식 역시 숨이 턱 막히긴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표현을 빌자면, 이 또한 "무서운 거짓말"에 편승하자는 것 아닌가.

바야흐로 재갈 물리려는 정권과 스스로 재갈 문 언론인의 결탁은 이제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국민의 세금으로 이렇게 나라와, 헌법과, 민주주의를 어지럽힌 정권이 또 있던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亂國)이요, 국격의 참사다. 우리는 사관(史官)으로서 이 참사를 빠짐없이, 정교하게 후대에 남길 것이다.

이번 'BH 하명' 사건에 대해서는 19대 총선과 연말 대선에서 준엄한 '국민 하명'이 있을 것이다. 진실의 햇볕을 잠시 손바닥으로 가릴 순 있어도, 분노의 먹구름이 뿌리는 빗방울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는 이 과정 또한 담대하고 날카롭게 기록할 것임을 약속한다.

2012-04-04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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