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세 번 찾아온 '인민군 朴대장'

▶영화 '실미도'로 유명해진 북파 공작부대인 '684 부대'가 북한의 '124 부대'를 모델로 창설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


'124 부대'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도 계실텐데, 68년 1월 21일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했던 '김신조 일당'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누군가의 '목을 따기 위해' 고도의 지옥훈련을 받았다는 점, 부대원이 31명이었다는 점에서 두 부대는 공통점을 지닌다.

'적국'의 수도 한복판까지 잠입해야 하는 임무, 게다가 가장 경계가 삼엄한 국가 원수의 침실까지 침투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임무를 지녔다는 공통점은 당시 '전쟁 불사'의 남북관계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124부대가 목적지인 '적국 수도'의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에 성공한 반면, 684부대는 '아국 수도'에 진입해 자폭으로 비운을 마쳤다는 점일 터이다.

물론 124부대 역시 비운을 겪긴 마찬가지다. 당시 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남파된 31명 가운데 단 한 명을 빼곤 싸늘한 주검으로 남한 땅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생포돼 지금은 목사님이 된 김신조 씨는 지난 2003년 "나를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다는 군 당국의 당시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충격 증언을 내놨다.

김 씨는 이듬해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도 "당시 북으로 도주한 공비가 한 명 있었다"며 "그 사람이 바로 송이버섯을 들고 서울 땅을 밟은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인민군 박재경 대장'의 첫번째 '남한 방문'이 '1968년 청와대 뒷산 침투'였음이 밝혀진 순간이다.

▶박 대장은 앞서 김신조 목사의 언급대로, 그후 30여년이 지나 2000년 9월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수행하며 남한 땅을 두번째 밟게 된다.

첫 방문 때 나침반과 소총이 들려있을 양손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보낸 '칠보산 송이버섯'이 들려있었다.

여기서 잠깐, 박 대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표 등 '三朴'의 인연도 빼놓고 갈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목을 따러 왔다가' 북으로 돌아간 박 대장이 다시 송이버섯을 들고 남한에 왔다간 뒤, 2002년 5월에는 박 전 대표가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박 전 대표에게 "1. 21 사건은 극단주의자들의 짓이었다"고 사과하면서 "그들은 그 죄를 받았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21침투에 직접 가담해 살아돌아온 것으로 알려진 박재경이 인민군 대장이 되어있는 현실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과 내용과는 정면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어쨌든 박재경은 현재 단순한 '군 대장'을 뛰어넘어 군내 우상화 작업과 사상교육을 도맡으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총애하는 '대장 3인방'의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1933년생으로 현재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을 맡고 있는 박 대장은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이명수 총참모부 작전국장과 함께 김정일 위원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이들 3인방은 지난달 김 위원장의 금강산 전선 시찰에도 동행해 비로봉 정상에 함께 올랐으며, 특히 박 대장은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131회 가운데 44번을 수행하며 가장 많은 수행횟수를 기록했다.

이번 북핵 실험 국면에서도 이들 3인방은 "체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며 군 강경파의 목소리를 주도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시 말해, 박 대장이 '나침반'과 '송이버섯'에 이어 이번에는 '핵'을 들고 남한에 '침투'한 셈이랄까.

어찌됐든 '팩트'와 '역사'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는 얘기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2006-10-30 오후 3:42:24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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