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언딘'에 방역은 '삼성'에…국가는 뭘했나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세월호가 가라앉은 2014년 4월. 1분 1초가 아까웠던 당시 구조 작업을 관장했던 해양경찰청은 해군이나 소방당국, 경찰 등의 외부 지원을 모조리 거부했다.


참사 당일 해경과 근처에 있던 민간 어선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이들이 바로 소방방재청 산하 중앙 119구조단이었지만, 구조 작업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소방방재청은 사고 당일 오전 잠수사 20여명을 현장에 급파했지만, 해경은 '구조상황이 종료됐다'며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뒤이어 해군 특수전전단(UDT)과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이날 정오 무렵 현장에 도착했지만, 역시 해경의 제지로 세월호 주변 탐색 작업만 벌이다가 철수했다.


이후 해군의 SSU 대원들은 잠수사가 붙잡고 잠수할 수 있는 '생명줄'인 하잠색 1개를 세월호에 최초로 설치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곧 해경의 '통제'로 한동안 입수조차 못했다.


경찰청 역시 이날 오전 해경에 지원하겠다며 연락했지만, 해경은 "우리가 다했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해경이 '다한 일'은 민간구난업체를 수소문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에 전화를 걸었던 일뿐이었다.


당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심해잠수 전문업체인 언딘이 군경보다 유능하다고 치켜세웠다. 고명석 대변인은 참사 사흘 뒤인 19일 언딘에 대해 "심해 잠수를 전문적으로 하는 구난업자"라며 "전문성은 해경과 해군보다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간에 구조를 내맡겼던 정부는 결국 단 한 명도 배 밖으로 살려서 꺼내오지 못한 언딘에게 80억여원의 수난 구호비용만 지불하게 됐다. 해경과 언딘의 미숙한 초기 대응은 법정 공방을 벌이며 아직 미궁에 빠져있다.



1년여 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달 14일. 보건복지부의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공식브리핑에서 세월호 당시 고 대변인의 주장과 '판박이' 같은 해명을 내놨다.


권 반장은 "삼성서울병원장이 감염내과 전문의"라며 "삼성서울병원 안에서 직원, 의사, 간호사, 환자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해 관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또 지난 14일 국회 메르스 특별대책위원회에서는 권 반장은 "평택성모병원을 우선으로 판단했다"며 "지난달 5~6일에야 삼성병원의 상황도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털어놓았다.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은 대한감염학회 전임 이사장이자 현 아시아태평양감역학회 회장이다. 더구나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초 메르스 환자를 확진한 뒤 병원 자체 추산 400여명의 접촉자를 찾아 격리하는 등 사태 초기만 해도 메르스 사태의 '1등 공신'이었다.


권 반장의 설명대로라면 보건당국은 당시 한 명의 메르스 의심자가 빠져나갔을 뿐인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병원 자체 대응에 맡긴 채 '발등의 불'인 평택성모병원에 집중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국장은 "반대로 영업 이익 저하를 우려한 삼성서울병원이 적극적으로 정부 개입을 막았을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청와대 등 어느 정도의 '윗선'이 개입했는지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당국과 삼성서울병원 가운데 누가 주도했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이들이 '방역의 민영화'를 단행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당국의 인력 배치를 살펴보면 5월 20일 평택성모병원에 3명의 역학조사관을 내려보낸 데 이어, 5월 28일까지 총 5명의 역학조사관을 이 병원에 배치했다.


심지어 14번(35) 환자의 감염 가능성을 삼성서울병원측에 알린 5월 29일에도 역학조사관 10명을 비롯, 센터장 2명과 과장 1명 및 사무관 1명 등 관련 공무원 4명을 평택성모병원에 집중 배치했다.


이처럼 정부가 병원 측에 방역 대응을 떠맡겼다가 지난달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심야회견에 쫓기듯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감염 상황을 공개하기까지 '의문의 일주일' 동안 당국과 병원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박 시장의 기자회견으로부터 사흘뒤 송재훈 원장은 "5월 27~29일 사이 14번 환자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 675명과 의료진 218명 등 총 893명을 격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 병원이 어떤 기준으로 격리대상자를 선정했는지, 정확히 언제 어디로 격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14일 국회 메르스 특별대책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14번 환자 확진 직후 응급실 전체 방역소독을 하면서 환자와 보호자를 제대로 격리하지 않아 귀가한 사례도 있다"며 지적할 만큼 허술하게 관리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병원 의료진인 35번(38) 환자나 60번(37·여), 62번(32), 138번(37) 환자는 14번 환자와 접촉했지만 격리되지 않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비교적 동선을 파악하기 쉬운 병원 의료진조차 제대로 격리하지 못한 병원의 '자체 대응'이 정상적으로 이뤄졌을 리 없고, 실제로 이 병원에서 발생한 환자 9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명은 비(非)격리 상태에서 감염됐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관 3명이 지난 5월 29일 삼성서울병원을 찾았지만 병원 측은 출입을 통제했고, 이후 메르스 접촉자 명단 제공도 소홀히 했다는 지적마저 제기됐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의 감염사실이 확진 판정 사흘 뒤인 4일에야 발표되고, 이후 하루에도 십수명씩의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미 당국과 병원 측이 확진자를 파악했으면서도 감췄다가 뒤늦게 밝힌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보건당국 수장인 문형표 장관도 지난 8일 국회 메르스 특위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왜 14번 환자를 방치해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느냐는 질문을 받자 "저희도 궁금증을 갖고 파악하고 있다"며, 여전히 삼성병원은 통제 밖에 있음을 시인했다.


이후로도 정부는 CBS노컷뉴스가 보도한대로 보름이 지난 6월 13일까지도 삼성서울병원에 방역대응의 주도권을 맡겨뒀다.


보건당국이 2차 유행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했던 지난달 12일. 삼성서울병원 이송요원인 137번(55) 환자를 포함해 이 병원에서만 7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접촉자에 대한 격리조치 등 방역 대응을 사실상 병원에 일임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방역 통제 밖에 있는 동안 삼성서울병원에서 발견된 환자만 91명, 사망자는 16명이다. 이 병원에서 발생한 환자로부터 다시 3차 감염이 된 경우를 합치면 전국에 101명의 환자를 낳았다.


그러나 책임을 져야 할 삼성서울병원에 정부가 내린 조치는 코호트 격리도, 전체폐쇄 조치도 아닌 원격진료 특혜뿐이었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구조 작업은 언딘에, 방역 작업은 삼성서울병원에 내맡긴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금의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세금은 왜 걷는지 탄식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박근혜 정권은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철학도, 의지도 없이 컨트롤타워 부재 상태였다"며 "행정부 자체도 위험을 예방하고 국민 안전을 챙길 능력을 민간에 떠넘겨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또 "영리 위주의 기업과 달리 정부는 수익이 없어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다중 인명사고가 일어났을 때 관계 당국·기업이 정보를 숨기거나 직무를 유기할 경우 가중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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