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에서 한치도 변함없는 어떤 것들

"잊지 않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에서 뒤집어진 채 파란 배를 드러낸 세월호를 기억한다. 어떤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젖은 교복을,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기억한다. 어떤 사람들은 팽목항을, 단원고를, 광화문 광장을, 그리고 결국 청와대를 기억한다.

세월호 참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든 결국 우리의 기억들은 하나의 숫자에서 멈춘다. 

20140416. 

세월호 참사를 그만 묻고 돌아서 잊으려 해도,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를 보면서 이대로는 4월 16일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자는 세월호 선체 인양현장에서 마주친 몇 장면에서,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역시 2014년 4월 16일에서 변하지 않고 머물러있는 낯익은 얼굴을 다시 만났다.

◇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대화 거부하는 박근혜 정부의 총리들

3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국무총리는 정홍원 현 박정희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었다. 정 전 총리는 참사 직후인 2015년 4월 20일 허술한 수색작업에 반발한 가족들을 설득하러 현장에 나섰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 전 총리는 차를 탔고, 실종자 가족들이 그 차를 둘러쌌다. 정 전 총리는 가족들의 대화 재개 요구를 물리치고 3시간 가량 차 안에서 눈을 감은 채 시간을 보내다 결국 현장을 떠났다.

3년이 지나 지난달 26일 진도 팽목항을 찾은 정 전 총리는 "정부는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아쉽고 부족한 점도 있기 마련"이라며 "가족들 입장에서는 항상 원하는 게 많이 있으니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는 주장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일, 이번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중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목포 신항을 찾았다. 그동안 황 총리는 2015년 6월 총리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세월호 관련 현장을 찾지 않았다.

이날 황 총리는 미수습자 가족들과 만났지만, 유가족과는 만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1시간 넘게 항구 출입문에서 황 총리를 기다렸지만, 황 총리는 유가족들이 수습본부 대기실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한 채 현장을 떠났다.

당시 유가족들은 물론, 미수습자 가족조차도 "황 총리가 미수습자 가족만 만나고 거긴(유가족) 왜 안가서"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다음날 총리실에서는 관련 기사를 쓴 CBS 기자에게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첫 통화에서 총리실 측은 "기사의 사실관계는 틀리지 않았으나 제목 수위라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기사의 제목은 <세월호 가족 '이간질' 나선 황교안, 유가족 무시 황급히 떠나>였다. 물론 CBS 기자는 제목 수정을 거절했다.

다음 전화를 걸은 총리실 직원은 자신이 아까 전화를 걸은 직원보다 더 직급이 높은 공보기획비서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권한대행께서 직접 기사를 보시고는 본인의 의도와 다른 기사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저기'하시다"며 법적 조치를 운운하면서 기사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CBS 기자들은 황 총리 마음 속 의도 따위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황 총리의 의도가 무엇이든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입을 모아 황 총리가 가족들을 이간질하고 갈라놨다고 주장하면 그 결과는 공무원이자 공인인 황 총리가 수습해야 한다. 

총리의 기분이 '저기'하시면 희생자 가족들이, 언론이 알아서 '거시기'해야 하는가?

◇ 사고 원인부터 인양까지… 풀리기는커녕 쌓이기만 하는 의혹들

"CBS 기자님 맞으시죠? 잠시만 이리로…."

지난 2일, 목포 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정례브리핑이 끝나고 한 해양수산부 관계자가 기자를 찾았다.

이끄는 대로 따라가자 해수부 이철조 현장수습본부장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님이 같은 내용으로 질문을 많이 해서…아예 궁금해하는 사항을 다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이 무렵 CBS 기자는 정례브리핑마다 세월호 선체 인양 도중 절단된 좌현 선미 램프가 열린 사실을 해수부가 미리 알지 못했냐는 질문을 거의 매일 물었다.

앞서 지난달 23일 밤 해수부는 인양 도중 램프 잠금장치가 파손돼 열린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반잠수선 선적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램프를 물 속에서 절단했다.

절단한 램프 출입구에 유실방지망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해수부는 컨테이너가 출입구를 막아 안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인양 직후 램프 출입구에는 경승용차와 굴삭기가 걸려있었다. 이 차량들은 반잠수선 위 작업인력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선체조사위원회 통보 없이 제거됐다.

주차장에서 이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했던 비슷한 대답을 반복했다. 사전에 촬영한 소나 영상은 해상도가 낮아 잠금장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고, 잠수사 역시 물 속이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해명이었다. 

'컨테이너' 논란 역시 잠수사가 출입구를 손으로 더듬어 철판이 느껴져 컨테이너로 착각해 보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스타파와 SBS 보도 등을 종합하면 해수부는 소나 영상을 통해 램프 개폐 장치의 파손 여부를 확인했고, 이 영상을 토대로 해수부도 "좌현 후미 부분은 충격에 의해 변형됐다"며 "선미 부분 변형이 식별된다"고도 밝혔다.

만약 인양작업 전에 해수부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세월호 선체는 리프팅빔 방식으로 인양됐다. 수십개의 철제 기둥 위에 선체를 올리고, 기둥 양 끝에 와이어를 연결해 바지선에서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해수부 스스로 강조한대로 인양 작업에서 아주 작은 무게중심의 변화조차 작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때문에 인양당국은 와이어의 미세한 장력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인양했다.

해수부는 지난달 22일 오후 9시쯤부터 인양작업을 시작했고, 다음날 오후 6시 30분쯤 램프가 열린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길이 11m, 폭 7.9m, 무게 40t에 달하는 램프가 거센 조류를 따라 흔들리는데 만 하루가 지나서야 이를 알았다는 해수부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 본부장은 램프 절단 작업은 물론, 인양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관해 모두 작업인력의 헬멧에 장착한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밝혔다. 

정례브리핑마다 여러 언론사의 취재진이 반복해서 동영상 공개를 요구했지만, 해수부는 "검토 후 곧 공개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면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음모론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정부의 수색 및 인양과정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혹들은 거듭 늘어만 간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누구나 세월호 참사를 막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다. 판박이처럼 2014년 4월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이들을 밀어내고 우리는 4월 17일로 가야만 한다.

"2014년 4월 16일에 있는 9명의 사람과 그 가족들을 4월 15일로 보내주면 더 고맙겠지만, 이건 할 수 없는 일이라네요. 그렇다면 4월 17일로 보내달라는 것이 소원입니다."

미수습자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의 애타는 호소처럼 말이다.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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