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싸움' 몰린 예산안…'토목'이 '복지' 밀어낼까

내년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인 다음달 2일까지 남은 날짜는 11일. 하지만 주요 쟁점을 둘러싼 이견으로 심사가 지연되면서, '나눠먹기식' 졸속 편성이 재연될 거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초 여야는 지난 14일부터 '감액 심사'에 착수, 23일까지 마친 뒤 27일부터 '증액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핵심 과제들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 반대에 부딪혀 줄줄이 보류된 탓에 예산안의 기한내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 429조원 규모로 올해보다 7.1% 증가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노동 분야는 올해보다 16조 7천억원 증가한 146조 2천억원인 반면, 도로와 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20%가량 삭감됐다.

하지만 야당들은 핵심 정책 예산은 대폭 줄이되, SOC 예산은 다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보다 4조 4천억원 삭감한 17조 7천억원을 SOC예산으로 편성했지만, 감액심사 직전 상임위 심의에선 2조 3천억원 넘게 오히려 증액됐다.

이러다보니 △공무원 증원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예산은 여야 갈등 속에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임기 5년간 공무원 17만 4천명을 증원한다는 방침 아래 내년 예산엔 3만명 증원을 위한 인건비 4천억원을 반영했지만, 야당들은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 역시 "정부 예산을 민간기업에 지원한 전례가 없다"는 논리에 막혀 상임위 예결소위에서 공전중이다. "공무원 증원 예산과 최저임금 인상 재정투입은 원점 재검토를 촉구한다"는 국민의당 입장에서 보듯, 상황이 녹록치 않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역시 감액 심사에서 통째로 보류됐다. 사업에서 제외된 서울의 역차별 문제와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핵심 복지정책이자 '문재인케어'로도 불리는 건보 보장성 강화 예산도 여야 이견 속에 표류중이다. 건보 확대에 따른 국고지원분은 4천억원이 배정돼있다.

예산안 심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다급함도 한층 커지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예정에 없던 국회를 찾아 여야 지도부를 만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 부총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내년도 예산안을 작성했다"며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법정시한내 통과되도록 도와달라"고 정치권에 당부했다.

'대폭 감액'에 무게를 둔 야당 기류를 감안할 때 포항 지진에 따른 재정 수요도 내년 예산안의 새로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21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공공시설물 내진 보강 등 410억원 수준의 지진 관련 예산 증액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엔 지진방재 예산이 올해보다 13%가량 줄어든 3165억원 규모로 반영돼있다. 야권도 지진 관련 예산 증액에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문제는 야당이 요구하는 복지·일자리 예산 감액의 폭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다음달 2일까지 여야 합의와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막판 초읽기 속에 '누더기 편성'이 이뤄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명 '쪽지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사업 예산이 여야 의원들간 암묵적 합의하에 마구잡이로 추가될 경우, 삭감하기로 했던 SOC예산의 비중도 다시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상임위 단계에서 오히려 늘어난 SOC 증액분 2조 3679억원 가운데 철도건설은 5594억원, 도로건설 4984억원, 철도 유지보수 및 시설개량 3405억원, 지방하천 정비는 1483억원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토목성장을 지양하고 복지를 늘리겠다"고 표방한 것과 달리, 또다시 '토목'이 '복지'를 밀어낼 거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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