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처' 오명 씌운 외국인 감세…'국익' 도움되나

EU(유럽연합)가 한국을 '조세분야 비협조적 지역', 일명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우리 정부가 부랴부랴 후속 대응에 나섰다.

공식 입장을 담은 공문을 지난주 EU에 보내는 한편, 기획재정부 담당 국장도 EU본부로 급파했다. 특히 이번주 열리는 EU와의 공동위원회에서 우리쪽 입장을 적극 설명할 계획이다.

외교부 노규덕 대변인은 "고위급 외교채널을 활용해 EU 고위급면담과 EU 주요 개별 회원국을 대상으로 우리측 입장을 설명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나라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 건 외국인투자 세제 지원 때문이다. 1962년 외화 유치 목적으로 처음 도입된 뒤, IMF사태 직후인 1999년부터 조세특례제한법으로 일원화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제도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등에 입주한 외국인 기업에 대해 5년간 법인세를 100%, 추가로 2년간 50%를 면제해주고 있다. 5년형의 경우 처음 3년은 100%, 이후 2년간 50% 감면이 적용된다. 

EU는 이 제도의 폐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했지만 "국익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제도 폐지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긋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우리 입장에선 상당히 논쟁할 부분이 많다'며 "이번주에 우리 실무책임자가 EU대사를 초치해 충분히 얘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제도가 과연 오명을 감수하면서 '국익'을 내세울 정도로 외국인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지를 놓고는 의문이 적지 않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이 제도를 통해 외국인 기업이 감면받은 법인세는 지난 2011년 8199억원에서 올해는 1161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 2004년 이후 2015년까지의 외국인 투자액 1121억달러 가운데 경제자유구역으로 투자된 액수도 5% 수준인 56억 달러에 불과했다. 2015년의 경우 국내에 들어와있는 외국인 투자기업 1500여곳 가운데 경제자유구역 입주 등으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곳은 2%에 그쳤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한 212억 9900억 달러 가운데 EU는 73억 9600만 달러로 34.7%를 차지했다. 지난 2012년 27억 달러에서 5년새 3배 가까이 급증한 규모다.

따라서 큰 실익도 없는 법인세 감면 제도를 고집하다 EU 투자를 위축시키는 '소탐대실'을 범하는 건 아닌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한 관계자는 "조세 감면을 앞세운 외국인 투자 유치는 개발도상국 시대의 방식"이라며 "이제라도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세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 두 곳뿐이었지만, 이번에 터키가 이를 폐지하기로 한 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을 통해 일부이긴 하지만 내국 기업에 대해선 법인세를 다시 높이는 쪽으로 선회한 만큼,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정책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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