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와 '보드카'의 차이

참여정부 들어 한미간 엇박자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된 대정부 공세 논리였다.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논란 역시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한미간 현안에 대한 시각에서 미국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곳은 한나라당임이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의 14일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이날 오후 버시바우 대사의 예방을 맞은 강재섭 대표는 "한미 관계가 노무현 대통령 정권 들어 상당히 위기"라며 "현 정부는 위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겉으로만 한미 관계가 좋다고 할 뿐 실상은 그렇지 않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또 "이제 정부만 믿고 있을 수 없다"며 "한나라당이 미국과 여러 채널을 유지해 미국의 진심과 우리의 갈 길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행동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는 "(강 대표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미 대사관과 한나라당의 지속적 접촉을 통해 한국 정치 현안을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진 미국과 한나라당의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미간 최대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양측의 입장차는 확연히 드러났다.

한나라당의 최대 관심사는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였지만, 미국은 FTA(자유무역협정)를 꼽았기 때문.

강재섭 대표는 이날 버시바우 대사와의 면담 시간 대부분을 작통권 문제에 할애했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는 한미간 '공통 관심사'(common concern)로 단연 FTA를 꼽았다.

버시바우 대사는 "지속적으로 한국정책 전반에 관해 계속 연락을 취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우려 사안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공동으로 해결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배석한 동시통역사는 버시바우 대사의 이같은 언급을 '우려사안'으로 풀이했다. 작통권 문제가 한미관계에 가장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우려와는 달리, 미국은 FTA를 예의주시한 셈이다.

결국 국내 정치권이 한미 관계를 여전히 '이념'과 '안보'와 '전통'의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미국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흐름에 맞춰 '실용'이란 잣대로 한국을 보고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날 대화를 마치면서 강재섭 대표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다음에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여러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혈맹국'의 대사인만큼 "나도 한국의 소주를 좋아한다"고 화답했을 법도 하건만, 버시바우 대사는 "나는 보드카를 더 좋아한다"고 은근히 각을 세웠다.

'소주'와 '보드카'의 차이만큼 엇갈려 있는 한미 관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6-08-15 오후 3:14:00 | ONnOFF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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